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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일논단] 문화재에도 서열(序列)이 ?
담당부서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작성일 2021-07-14
작성자 지병목 조회수 1401

[대일논단] (대전일보, '20.10.05)


'국보 제46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 보존처리.'


우리가 자주 접하는 유형의 언론 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국보 명칭인 부석사 조사당 벽화지, 지정번호가 아니다. 그런데도 시험이나 퀴즈프로 등에서도 유적설명과 함께 대부분 지정번호가 등장한다. '백제 무왕 때 세워졌으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국보 11호로 지정된 이 문화재는?' 하는 식이다. 정답은 익산 미륵사지석탑이다. 그런데 이 석탑이 국보 11호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보 제1호가 '숭례문(남대문)'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다. 그러면 국보 2호는? 1호는 잘 아는데 2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 굳이 그 번호가 해당 문화재의 이해에 꼭 필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유적 설명에 감초처럼 지정번호가 따라다니는 것일까.


오래전 많은 중요문화재가 소장된 일본의 유명한 사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 앞에 붉은 글씨로 국보(國寶)라고 표기된 설명문을 보다가 동행했던 일본인 문화재 전문가에게 "이것은 국보 몇 호에요?"라고 물었다. 그 직원의 대답은 "몰라요. 관리번호를 굳이 (일반인들이) 알 필요도 없고, 안내문에 표기할 이유도 없지요". 순간 약간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국보나 보물이라면 의례적으로 '국보 ○○호 △△ □□□'라고 안내판에 쓰여 있기에 물었던 것인데 돌아온 답은 신선했다. 그 후로도 일본의 어느 유적지나 자료 등에서 일본의 국보 호수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중국의 경우도 비슷했다. 여기저기 다녀본 유적지에서도, 찾아본 자료에서도 우리의 국보와 유사한 '국가 1급 문물(國家一級文物)'의 호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심양고궁박물원의 유물이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13점의 '국가 1급 문물'이 포함됐는데 당시 그 호수를 알려주는 정보가 우리 측에 전달되지 않았다. 당연히 전시 안내문과 도록에도 호수는 표기되지 않았다.


문화유산이 많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경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마 전 화재로 첨탑 등이 훼손돼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던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해 검색해 봤다. 프랑스는 역사기념물을 지정(MH classe)과 등록(MH inscrit)이라는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자료를 찾았지만, 대성당이 지정된 역사기념물이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사실과 상세한 유적설명은 있었지만 그 (지정)번호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대성당과 관련된 숫자를 찾았다. 'notice n˚ PA00086250'. 이를 다시 검색창에서 검색해 보면 프랑스 문화부의 문화유산 안내코너로 연결된다. 이 숫자는 대성당의 관리번호인 듯하다. 이 번호는 자주 쓰이지 않으며, 일반인에게 의미 있는 정보도 아니다. 이처럼 우리와 비슷한 체계인 북한을 제외하면, 지정번호가 일반에 노출돼 문화재 명칭과 함께 쓰이는 예를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 보듯, 문화재의 지정(혹은 관리) 번호는 우리가 그 문화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는 아닌 듯하다. 이 번호는 문화재를 지정할 때 부여한 관리번호일 뿐이다. 그 순서가 문화재의 우열을 가리는 순위이거나 국민의 선호도를 가늠하는 숫자는 더더욱 아니다. 아마도 우열을 가려 호수를 준다면 새로 우수한 문화재가 확인될 때마다 지정번호를 다시 정해야 하는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가끔 잔소리를 한다. 지정번호를 문화재 명칭의 앞에 내세워 쓰지 않았으면 하는 지적질(?)을. '국보 ○○호 △△ □□□'보다는 '△△ □□□(국보)'라고. 번호를 빠트리는 것이 서운하거나 필요하다면, △△ □□□(국보 ○○호) 정도로만. 문화재의 지정번호는 단순히 그것이 지정된 시간적 순서이며, 관리를 위한 수단이다. 그러니 지정번호는 필요한 사람들이 필요한 경우에만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너무 많은 정보는 오히려 사족(蛇足)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며,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할 경우도 있으니까.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출처: 저작권자ⓒ대전일보사]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44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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