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발굴조사 상세
유적명 익산제석사지 발굴조사
시대 백제~고려시대 조사기간 2007-2009
소재지(구주소)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 일원 지정사항 사적 *
저작권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용범위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익산 제석사지(사적)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정관(貞觀) 13년(639년) 뇌우로 인하여 佛堂과 七級浮圖 및 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전하져서 7층의 목탑과 불당과 회랑 및 승방 등을 갖춘 대규모 왕실사찰로 추정된다. 그리고 제석사지는 백제 무왕이 지모밀지(枳慕密地)로 천도(遷都)하여 세운 왕실사찰로 보는 견해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동안 제석사지는 1993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한 시굴조사에서 1탑 1금당의 가람배치를 확인하였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제석사(帝釋寺)」銘 명문와·백제 당초문 암막새를 비롯한 7세기대 기와가 다량 출토되었다. 그리고 2003~2004년에 걸쳐 기존에 왕궁리 전와요지(傳瓦窯址)로 알려져 있었던 제석사지 북동편 지역에 대한 조사에서는 7세기 전반의 연화문 수막새·불에 탄 소조불상 및 악귀상·벽체편 등이 다수 출토되어 이곳이 제석사지의 건물폐기장임을 확인하였다.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학술조사는 정비복원의 목적으로 기존의 조사 성과를 기초로 하여 2007년 6월 22일부터 2차례에 걸쳐 진행 중이다. 제1차 조사(2007. 6.~2008. 8.)에서는 사역 중심부(9,100㎡)인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고, 제2차 조사(2008. 11. 26 ~ 2009. 12. 29)에서는 사역 중심부(15,118㎡)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부속건물, 회랑, 중문지 등을 확인하였다.
조사결과, 제석사지의 가람 배치는 기본적으로 사비기 백제의 사찰과 동일하며, 그 규모는 매우 컸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목탑 등 기단 기초부의 특이한 조성 방식을 규명할 수 있었다. 조사 성과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미 확인된 목탑지·금당지·강당지 이외에 회랑지·중문지·동서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목탑지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42.2m나 떨어진 지점에서 확인된 동회랑지의 폭은 7.8m로 그 폭이 6.8m인 미륵사지 회랑 등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 사찰의 회랑 중 가장 넓다. 그리고 금당 좌우에서 회랑의 폭보다 넓어진 동·서건물지도 발견되었는데 사비기 백제 사찰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건물이며, 그 폭도 13.2m로 유사하다. 또한 목탑의 남쪽에서 중문의 기단 기초부가 확인되었는데, 동서 길이 23.56m, 남북 폭 14.6m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강당의 북측에서 승방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도 발견되었다. 이처럼 제석사는 동·서 회랑 사이의 거리가 약 100m이고, 중문에서 강당 사이의 거리가 약 140m로 단일 규모의 사찰 중에서는 백제 최대로 볼 수 있다.
둘째, 땅을 파고 기단 기초를 조성하면서 작업 통로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목탑지의 북동·북서·남서쪽 모서리에서 부정형으로 돌출된 형태로 나타났다. 북서쪽 모서리에서 확인된 작업 통로는 길이 3.84m, 폭 1.36m이다. 작업 통로는 계단 모양인데, 각 단의 폭은 30~40cm, 단 사이의 높이 차이는 15~24cm로 다양하였다.
셋째, 목탑지와 금당지 사이의 서편에서 목탑과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한 방형 건물의 기초부가 새롭게 확인되어 제석사의 조성 및 변천양상을 밝히는데 새로운 단서를 제공하였다.
금당지의 서쪽에서 확인된 동서 21.5m, 남북 20.8m인 방형의 건물 기초부는 정교하게 판축하였는데 현재의 지표 아래로 두께 130cm 정도 남아 있다. 특히 목탑 기단 기초에서 보이는 달구질흔(고대 건물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진 흔적)보다 훨씬 치밀하고 정교하였다. 네 모서리에서는 목탑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계단상의 작업 통로가 발견되었는데 작업이 끝난 후 이 부분도 판축을 정교하게 하였다. 이 금당 서편의 방형 건물은 목탑과 그 규모와 축조수법이 동일하기 때문에 목탑과 아주 유사한 성격의 건물로 추정되는데, 남북편에 금당이나 중문 등 가람으로 추정할 만한 별다른 건물이 없어 그 조성 배경에 대해서는 앞으로 검토가 필요하다.

향후 제석사지의 성격 규명을 위해서는 사적 범위의 확대와 제석사가 불탄 후 그 잔해물을 버린 곳으로 추정되는 인근의 폐기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및 연구도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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