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조사
유적명 | 영산강유역의 고대고분 정밀분포조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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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조사기간 | ||
소재지(구주소) | 영산강유역 | 지정사항 | |
저작권자 |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 이용범위 |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
영산강유역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청동기시대 지석묘를 비롯하여 옹관묘, 석실묘 등 각 시대별 독특한 고분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3~7세기에 걸친 영산강유역의 고분은 제형 · 방형 · 원형 · 전방후원형 등 다양한 형태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어 일찍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산강유역의 고분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1918년, 1939년 나주 반남일대 고분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대형옹관을 사용한 묘제의 독특함과 더불어 금동관, 금동신발 등 중요 유물이 출토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60년 우리 학자에 의한 영암 내동리 고분군 조사가 실시되었으나 연구의 활력이 되지는 못하였고,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영산강유역의 문화적 독자성을 강조하는 본격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영산강유역 고분 연구의 전환점이 된 조사는 1990년대 후반 실시된 나주 복암리 고분군 발굴조사이다. 2000년대에는 고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가 소강상태이나 지역공동체의 위계화 및 대외교섭 양상이 확인되는 나주 영동리 고분군, 분구의 축조방식에 대한 다양한 연구 기초가 된 영암 장동리 방대형고분이 주목받았다. 영산강유역권을 비롯한 전남지역의 고분은 『전남지역 고분 측량보고서』, 『함평의 고분』, 『고창의 분구묘』 등의 보고서에서 이미 잔존상태가 양호한 고분에 대한 측량도가 소개된 바 있으나, 측량 대상 고분이 제한적이고 영산강유역권 전체의 고분 분포 및 현황이 정리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에서는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하는 한편 학술적인 가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훼손되어 가는 고분을 대상으로 현 상태의 기록 및 측량, 항공촬영을 통해 이 지역 고분의 기초자료를 수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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