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

발굴조사 상세
유적명 구황동 원지 유적
시대 신라시대 조사기간 1999~2004
소재지(구주소) 경상북도경주시 구황동 292번지 지정사항 사적
저작권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용범위 제4유형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보고서명 경주 구황동 황룡사지전시관 건립부지내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구황동 원지 유적은 분황사 동쪽의 북천 남쪽 강안에 접하며, 신라왕경의 방리제에 따른 택지구획이 적용되지 않은 유적이다. 유적의 남북축은 N-15°~25°-E로 편동된 모습이다. 유적은 계단상의 지형을 따라서 축조된 북서-남동 방향의 축대를 기준으로 남서쪽의 상층부와 북동쪽의 하층부로 구분된다. 상층부에서는 7세기대의 육각형건물지와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등이 확인되며, 초석 건물지의 경우 적심부만 확인된다. 특히 축대의 방형 돌출부에는 누각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적심만 일부 확인되었다. 하층부는 연못을 중심으로 형성된 원지와 그 북쪽의 건물지로 구분되는데, 원지 내에서는 상하로 중복된 호안석축과 부속시설 그리고 선행 원지 유적과 관련된 ‘ㄹ’ 자형 수로와 광장이 확인된다. 건물지는 대체로 1~2동의 건물이 7개 소구역 안에 배치된 모습이다.

연못은 남북 길이 46.3m, 동서 너비 26.1m, 호안석축 길이 192m, 면적은 1,049㎡에 달하며, 안압지의 1/15에 달하는 모습이다. 연못 내부에는 대소 2개의 인공섬을 장축방향으로 나란히 배치했는데, 축조방법이 다르다. 남쪽의 소도는 연못 바닥을 굴광한 후 말각방형으로 성토하여 만든 반면, 북쪽의 대도는 하상퇴적층의 원지반을 그대로 두고 가장자리만 굴착하여 능형으로 만들었다. 또한 섬 주위의 바닥도 차이가 있는데, 대도 주변의 바닥은 소도에 비해서 최대 60㎝ 높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러한 차이는 최초에 연못을 조성한 후 필요에 따라서 연못이 확장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섬을 만든 방법의 차이는 연못의 축조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하게 한다. 연못의 호안석축은 중복된 모습을 보여주는데, 선행 석축은 장방형에 가까운 천석을 이용하여 바른층쌓기를 한 반면, 최종 호안석축은 천석과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로 축조되었다.

구황동 원지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인접한 분황사 출토유물과 거의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공반된 토기를 통해 볼 때, 유적의 초축시기는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며 폐기시점은 나말려초기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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